[신희섭의 뇌가 있는 풍경] 이타심은 어떻게 생겨날까?

입력 2022-03-09 21:08   수정 2022-03-10 04:35

무리를 이뤄 살아가는 동물들의 사회적 행동에는 친사회적 행동과 반사회적 행동이 있다. 이타행동(利他行動)은 친사회적 행동의 극단적 예로서 자신의 손해와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위하는 행위다. 반면 반사회적 행동의 극단은 사이코패스에게서 볼 수 있다. 남의 고통에 개의치 않고 오로지 자기 이득을 위한 이기적 행동을 한다. 사이코패스는 전에 언급한 적이 있으니(이전 칼럼 ‘공감의 뇌 기전과 사이코패스’), 이번에는 이타심의 뇌과학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이타심은 원래 사람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여러 실험을 통해 동물에게도 이타심이 있음이 밝혀졌다. 케이지 안에 있는 손잡이를 누르면 맛있는 음식이 제공되는 동시에 옆 케이지의 다른 원숭이에게는 전기충격을 주도록 하는 실험이 있다. 이를 알게 된 원숭이는 음식을 얻기 위한 손잡이를 더 이상 누르지 않았다. 쥐 역시 맛있는 먹이를 찾기보다 트랩에 갇혀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한 다른 쥐를 우선 구한다. 돌고래들이 그물에 걸린 동료를 도와주거나, 코끼리가 힘이 약한 동료를 일으키는 등 동물의 이타성은 자연에서도 어렵지 않게 관찰된다.

진정한 이타 행동이란 보상을 바라지 않고 타자의 복지를 위해 능동적 의도로 수행하는 행동이다. 이는 인간사회에서 큰 미덕으로 칭송된다. ‘자리이타(自利利他)’ ‘네 이웃을 네 몸같이 하라’ 등의 말처럼, 주요 종교는 모두 이타심을 권한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는 자기 생존과 번식을 최고 목표로 삼는다. 삶이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합리적 판단의 연속이다. 이런 진화심리학·경제학 등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이타심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이타심은 과연 어떻게 생겨날까?
희생하면 뇌에서 옥시토신 분비

이타심의 근원에 대한 논란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남을 돕는 행동이란 궁극적으로 보상·평판 등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 관심에서 시작된다고 봤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미덕에 부합하는 삶을 통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이타심이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이후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이기심 대 이타심’이란 주제에 의견을 냈다. 그러다 근래(30여 년 전)에 제임스 안드레오니는 이타심이 ‘내 할 일을 했다’는 만족감·뿌듯함(Warm Glow)에서 기인한다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이런 만족감은 경제적 보상은 아니지만 자기의 이타적 행위의 효과와는 무관한 심리 상태로서, 이기적 기쁨이라고 볼 수 있다. 이기심이 혼합된 이타심인 셈이다. 힌두교에서 세속인은 수행자에게 보시할 의무가 있는데, 이때 감사해야 할 사람은 보시받는 수행자가 아니고 보시하는 세속인이라고 한다. 귀중한 기회를 제공함에 감사하는 것이다.
봉사할수록 건강하게 오래 살아
이타적 행동이 만족감·뿌듯함 같은 추상적인 보상을 넘어서 실제 혜택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울·불안증 발병률 감소 등 정신건강 증진뿐 아니라 육체적 건강 개선, 나아가 수명 연장에도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55세 이상 성인 중 다양한 자원봉사를 하는 그룹과 아닌 그룹을 장기간 비교했더니, 자원봉사를 많이 하는 그룹에서 사망률이 63% 줄어들었다. 건강한 사람이 봉사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실험 전 평가한 건강 상태를 참작해 분석해봐도 사망률이 44% 이상 줄어들었다. 건강해서 자원봉사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고, 자원봉사를 많이 해 더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의미다.

사랑하는 이를 위한 희생은 문학작품의 단골 주제다.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단두대에도 오른다. 실제로 이타적 행동을 수행한 그룹에서 통증 반응이 현저히 감소했다는 연구가 있다. 뇌에서 통증 회로의 반응이 줄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타적 행동을 할 때의 뇌를 자기공명촬영(MRI)하면 보상, 공감 능력, 정서 조절, 평판 대응, 정신 집중 등에 관여하는 다양한 뇌 부위들이 활발하게 작동함을 알 수 있다.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쥐의 뇌 전대상피질에서 옥시토신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보고도 있다. 전대상피질은 공감 능력을 관장하고, 옥시토신은 관심과 배려에 중요한 호르몬이다. 요컨대 이타심도 뇌 기능의 산물인 것이다.

사람은 이타적 행위를 하면서 생의 의미를 실감한다. 인생에 가치를 느끼고 목표와 방향을 얻는다. 그렇기에 인생의 방향에 부합해 나아가는 길은 힘차고, 고통도 장애가 되지 않고, 극단적인 경우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타적 행동의 대상은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국가,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영웅, 순교자를 배출했다. 마음의 평안과 충만함 속에서 의연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기심·이타심의 논의를 뛰어넘는 감동을 일으킨다.

신희섭 IBS 명예연구위원·에스엘바이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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